봉준호, 하고 싶은대로 다 해도 되는
영화 미키17. 봉준호가 만든 최신작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아, 배우가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것은 알았구나. 하여간, 미키가 사람이름인줄도 모르고 그냥 봉준호 영화라니까 믿고 봤다.
한줄 평. 봉준호는 이제 하고 싶은대로 다 해도, 세계 시장에 다른 설명없이 먹히는 거장이 되었구나!
2058년, 인간 복제 기술도 이미 실용화 단계고, 우주 식민지 개척도 시작된 그리 멀지 않는 미래. 기술은 엄청 발전했을지 몰라도 사람 사는 꼬라지로 보자면 지금보다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미래라는 걸, 주인공 미키 반스의 처지가 그 방증한다.
사업을 하다 사채를 쓰고 갚지 못해, 지구 끝까지 찾아내서 전기톱으로 신체를 발라버릴 것이라는 위협을 당하는 중이다. 반스만큼이나 지구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ㄷ릉 우주 어느 행성에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욕심을 있는대로 투사한 식민지를 건설하고 싶은 자본가들이 운행하는 우주선 탑승권을 따내기 위해 또 목숨을 건다. 반스는 우주 행성 개촉에 요긴하게 쓸 별다른 기술이 없어서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직업, 익스팬더블에 지원한다. 죽으면 이미 저장된 신체정보와 기억정보를 입력받아 다시 제조(?)되고, 극한 일터(생체실험 류)에 투입되기를 반복하는 직업이다. 몸빵도 이런 몸빵이 없다다. 미키17의 17은 그렇게 죽었다가 복제되어 다시 사는 열 일곱 번째 미키라는 뜻이다.
2시간 17분짜리 영화인데, 지루할 틈이 없다. 정말 험하게 인간성을 파괴당하지만 미키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죽기를 반복하면서도 한사람하고 열열한 사랑을 나누고,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생명체와도 소통한 끝에 구원의 서사를 완성한다. 봉준호 영화를 다 본 것이 아니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영화는 희망적인 결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가까이는 대한민국 서울 용산, 지금은 의왕으로 옮긴 양반을 떠오르게 만드는 악당과 그보다 더 악랄한 부인, 능력은 없으면서 끝없이 아부하고 쇼를 선동하는 인물로 가득하다. 당연히 그런 자들의 이기심이 영화 내내 흥건하게 흘러내린다.
미키를 살아 있는 존재(인간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대하는 건, 죽어도, 혹은 죽여도 미안하거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인간, 심지어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아니다. 원래 그 행성에 사는 생명체 크리퍼(인간이 붙인 종의 이름. 자신들은 결코 그렇게 부르지 않을 것이다.)다. 확언하건데, 이 영화의 한 축인 크리퍼를 처음 마주했을 때 놀란 관객은 영화 속 시간이 흐른 후에 아주 색다른 감정으로 크리퍼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퍼뜩 봉준호의 영화 괴물의 괴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머리 부분은 좀 비슷하다. 몸통은 완전히 다르게 디자인되었다. 한강에 미군이 버린 화학물질 때문에 돌연변이가 된 괴물은, 봉준호의 영화에서는 인간을 공격하는 흉물이고, 이걸 퇴치하는 것은 영화가 설정한 세계에서 중요한 임무였더랬다. 즉, 당시에 그 괴물의 탄생은 매우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불의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고, 괴물에 감정이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미키17을 보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괴물을 괴물이 되게 한 것은 이기적인 인간인데, 외려 괴물보고 무섭다고 피하면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괴물의 서식처를 침범한 것은 인간아니었던가? 괴물이라고 딱지 붙인 생명체와 인간은 한강을 공유하면 안되었던가.... 봉준호가 괴물을 만들때 그도 괴물과 공존은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십 수년이 흘러 봉준호의 세계에 드디어 괴생명체도 같이 살아갈 공간이 생긴 것인지도.
결론. 봉준호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정서만 아니라 성경에 기반한 서구문화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자기 이야기에 녹여내는구나...기생충이 빈부, 계급갈등을 지극히 한국적 소재와 정서라는 당의정을 입히셔 세계에 좀 독특한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미키17은 등장인물들(특히 악당)이 주는 기시감은 있지만, 한국적 정서 없이 서구의 문화코드로 한국인까지 설득한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므로 원작에서 소재를 따온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서구적인 문화코드로 범벅인 원작을 아시안, 그것도 한국인 감독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순환논법 같지만 봉준호는 어떤 세계적 보편성을 자신의 이야기에 유려하게 담을 줄 아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역으로 그런 사람이라는 걸 헐리우드가 알아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워너브러더가 거금을 들여 이 작품의 감독직을 맡긴 것일지도.
봉준호다운 기지와 역설, 경쾌함과 진지함이 과하지않게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빼어난 수작이다. 허허실실한 것 같은데 깊은 인간의 심연에 놓인 악마성과 천진함을 경쾌하면서도 격조있게 그렸다. 꼭 한번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