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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은 만들어졌다.

슐로모 산드 지음. 만들어진 유대인. 두껍고 어려운 책이다. 저자가 책을 어렵게 쓴 건 아니다. 술술 잘 읽힌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을 읽은 적이 없다. 유대교에 무지하고, 유대인에 무지하다. 내가 잘 몰라서 어려운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평할 자격이 없다. 그냥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몰랐던 것을 정리할 수 있을 쁜이다.

 

저자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의 아들이다. 폴란드의 노동자로 공산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저자의 할아버지)가 사망하으로 경제적 형편이 나빠진 어머니에게 예배당 맨 뒤로 자리를 옮기도록 한 랍비와 교회를 경험했다. 이후 후 유대교 신자로 살지 않고 공산주의자로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로 귀환했지만, 유대인이 되지 못했다. 종교가 유대교가 아니어서다. 이슬람에는 유대인인이면서 유대인으로 인정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권한은 정부에 있다. 

 

유대인들이 고향 땅에서 쫓겨났다는 두 차례 강제추방을 저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이 귀환해야 할 정당성을  (억울하게?) 유랑하는 민족에서 찾는 것은 신화를 역사로 둔갑시킨 정체성 정치의 산물이다.

더 기막힌 점은 유대인들에게 유랑하는 민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은 애초에 기독교(그리스도교)였고, 시작은 비아냥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예수)을 음해하여 십자가에 매단 유대인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그 벌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쫓겨난 것 이라고 했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경쟁하던 시기에 만들어졌을 이런 선동을 2천년 쯤 후에 유대인이 무슬림 팔레스타인인들을 쫒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동원하였다.

 

물론 저자는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이 유대국가를 세우고 사는 것은 부당하다거나 되돌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쫓겨났으니 언제라도 돌아와 정주권을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학살(=나크바)하면서까지 배타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땅이 원래 유대인의 땅이었다고 해도, 현재 유대인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악독한 이스라엘이 저지른 일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었고, 상처가 아물지 알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지금 유대 땅에 세운 국가가 다민족을 품는 열린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그나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공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저자는 유대인이고, 이런 주장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한가하고, 그의 동족, 그의 모국이 저지른 일을 쉽게 덮으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다만, 저자의 이 책은 이미 두 민족의 손을 떠나 국제적 사안이 되어버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국제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서양사학자)로서 현재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시오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하고 역사에서 신화와 종교를 떼어내고 민족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어떻게 동원하였는지를 설명하는데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공을 들인다. 이 책이 어렵다고 한 이유다.

 

그러니까 이 책은 팔레스타인인과 국제사회에 이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는 유대인들에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시오니즈즘 역사학이 정치적 수사라는 걸 증명하려는 책이니, 설령 유대인의 시각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처럼 보여도 노여워는 말자.

 

이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알게 된 것들이 아주 많다. 민족이, 한민족을 포함하여, 그 역사가 매우 짧다는 것과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개념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왕 또는 황제를 중심으로 중앙집권국가를 유지하였던 아시아의 사정은 조금 차이가 있으나, 민족은 종교를 대신해 근대국민국가들이 자국으로 사람들을 묶기 위해 즉 소속감을 부여하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러는데 마치 기원전부터 수천 수만년전부터 원래 하나였다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기에 너도 나도 신화를 찾아서 서서를 붙였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역사교과서, 역사학이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고.

 

재미나는 것은 유대민족주의, 즉 시오니즘은 독일 주변에서 살면서 독일 민족주의를 부러움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본 유대인들의 창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오니즘은 불행히도 유럽의 민족주의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독일민족주의를 가장 많이 닮았다. 싸우다가 배운 것인가? 시오니즘의 극단적인 배태성은 본디 유일신 종교의 배타성-그 신이 유일하려면 다른 신은 다 악마여야 하고 배척해야 한다-에 독일민족주의가 덧대진 결과일지 모른다.

 

정말 이 책은 민족 개념에 관한 아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어렵지만 읽는 즐거움을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