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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늦은 후기

2002년 1편 개봉때부터 2, 3편 모두 기다리다 극장에서 봤다. 1편 반지원정대는 자리가 없어서 스크린 가까운 곳에서 봤는데 3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만큼 재미있었다. 2편은 다소 지루했고, 3편은 2004년 개봉했는데 그 시기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직후였다. 우연이지만 대통령이 돌아오고 난 후 개봉한 영화의 부제가 왕의 귀환이어서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보고도 딱히 어디에 후기를 쓴 것 같지 않다. 각각 3시간씩 길고,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도 복잡해서 정리를 포기하지 않았나 싶다. 뭉뚱그려서 재밌다 정도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 감정들은 극장에서 나오면 바로 흩어져버린 것 같다.

 

지난 목, 금 워크숍을 가서 묵은 호텔방 케이블 TV에서 3편을 방영하고 있더라. 우연히 봤는데 갑자기 제대로 한번 다시 보고 싶어졌다. 절대반지를 끼고 절대권력을 꿈꾼 어느 부부 때문이리라. 토요일 오후 종일 장장 9시간짜리 시리즈 3편을 몰아봤다. 명작은 명작이다. 다시 봐도 재밌고, 심지어 새롭다. 1편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23년 전이다. 어렸고, 시야도 좁았을 터. 어쩌면 절대반지가 뭔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럼 이제는 아나? 인간의 심연에 대해 체험적으로 더 많이 아는,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고 해두자.

 

사우론이 9개 반지를 만들어 인간계에 나눠주었는데, 알고보니 반지 하나를 더 만들어 9개 반지를 조정하는 절대권력을 누리고자 했다. 신들의 세계라 해도, 세상은 늘 자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전투에서 사우론이 곤도르의 영주 이실루두에게 패배하면서 사우론의 손가락을 벗어난 절대반지는 인간의 탐욕을 따라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영생하는 존재이므로 다른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는 요정 엘프 엘론드는 이실루드에게 반지를 파괴할 것을 권하지만, 이실루드는 끝내 반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인간의 손에 넘겨진 절대반지의 이런 시작은 결론과 수미상관한다. 절대반지를 파괴할 임무를 부여받은 프로도조차 실은 본인의 의지로는 반지를 버리지 못했다.(는 걸 다시 보며 께딜있다. 아하~~ 그렇구나..!) 

 

반지를 파괴하는 최후의 임무는 역설적이게도 골름이 차지한다. 원작자 RR 톨킨이 얼마나 인간과 인간세계를 매우 냉철하게 성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프로도가 굳센 의지로, 반지에 눈이 돈 골름이 달려들기 전에 반지를 끓는 쇳물에 던졌다면 어땠을까? 반지의 제왕은 12세용 영웅담에 그쳤을 것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고, 반지의 유혹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으며, 결국 절대권력을 향한 소유욕은 어느 용감무쌍한 인간의 의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  절대권력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반지 하나쯤은 갖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욕심을 채우고 싶어한다. 그걸 어느 선 이상은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다른 인간도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실반지다. 더 갖기 전에 뺏기지 않으려는 그 아슬아슬한 합의, 그게 민주주의다.

 

영화는 반지를 없애는 임무를 부여받은 프로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진짜 주인공은 뚱뚱이 샘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프로도는 흔들리며, 갈등하며, 유혹당하며 나아간다. 그래서 프로도는 영화 내내 답답하다. 영웅이라기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프로도는 매번 위기에 처하고, 그런 그를 구하는 건 샘이다. 프로도가 모르도르의 화염 앞에 설 수 있었던 건 샘의 조력 덕분이다. 3편 막바지에 스미골에게 배신당하고 환영에 시달리며 쓰러진 프로도를 들쳐 업으며 샘은 이렇게 말한다. 반지를 옮기는 건 내 일이 아니지만, 프로도를 업고 가는 건 할 수 있다고. 넷플릭스에 올라온 3편은 확장편인 모양인데, 영화 말미 프로도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샤이어에 남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현생을 지키는 건 샘이다. 세상의 모든 샘들에게 경의를!!

 

이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문제적인 인물은 스미골, 골룸이다.  프로도에게 샘이 없었다면 골름은 프로도의 미래다. 반지를 갖고 싶어 동료를 죽였던 스미골은 반지로 뭘 제대로 할 능력도 없으면서 반지를 탐하고, 반지의 노예가 된 인물이다. 1편에서 간달프는 골룸을 불쌍하게 여겨 죽이지 못한 벨보의 선택이 프로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복선으로 흘린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사우론 탑 옆 반지가 탄생한 불길을 내뿝는 화산으로 가는 길에 골룸의 도움을 받는 것만 염두한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프로도는 골룸과 동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골룸을 연민한다. 골룸은 샘과 프로도를 이간하면서 샘은 반지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때 반지의 주인이었던 골룸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프로도는 샘을 멀리할지언정 골룸을 내 내치지 못한다. 동병상련.

 

시간이 흐를수록 반지의 기운에 짓눌리는 프로도를 보면서 큰 권력을 가진 자, 얻은 자의 절제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승리인가를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이실루두는 물론이고 나즈굴이 된 아홉 제후들을 보라. 반지를 놓지 않기 위해 더 큰 절대권력에 복종하는 자들의 만행. 법에 따라 권력을 절제하는 민주당 출신 최고 권력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국힘 당의 대통령 다 섯이 모두 감옥가거나 불행한 최후를 맞은 것과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최근 미국 트럼프가 하는 짓은 또 어떤가?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절대반지... 누가 그 손가락을 자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