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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라는 퍼즐

부모는 자식을 잘모른다. 잘 알 것 같지만 잘 모른다. 자식은 오죽하랴. 자식은 부모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더 모를 밖에.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를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멀리한다. 아주 어릴 늦둥이 딸바보인 아버지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래미 노릇에 충실하기도 했다. 그 시절은 짧았다. 철이 들자 아버지와 점점 멀어졌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반항했고, 완전히 삐딱선을 탔다. 분단된 나라에서 이미 공산주의 조차 전세계에서 몰락해버린 마당에 빨치산이었던 사람을 부모로 둔 것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빨치산스럽게 사는 부모는... 천륜이라 끊을 수 없다면, 인륜으로라도 억지로 두 사람의 자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 소설은 그런 아버지의 부고로 시작한다.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서 자신은 미처 몰랐던 아버지를 ,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가와 아버지를 조문온 사람들의 관계를, 그들이 함께 지나온 시간을 마주한다. 그 속에 비로소 완전해 지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딸은 아버지를 밀어내고, 밀어내려고 삐딱선을 타지만,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도,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 마음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해방 직후 분단된 땅에서 좌우익은 대립하고, 급기야 전쟁까지 치달았다. 사람들은 극렬하게 부딪치고 죽고 죽이며, 다시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는다. 그렇게 해서 생긴 갈등은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절단 나고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이웃과 사람 사이, 한 지역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그렇지 않았음을, 끊어지지거나 파괴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나누며 사는 것, 손해보면서도 배푸는 것, 선의를 선의로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었고, 그렇게 사는 건 사회주의자가 아니어도 되었으므로, 아버지의 이웃들 중에는 빨치산이라는 아버지의 주홍글씨를 아랑곳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딸은 장례식장에 온 아버지의 조문객들의 회고 속에서 아버지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고 산에서 내려와 세상 속에서 신념대로 살다간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냥 사람에게 잘하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남과 북에서 모두 외면받은 빨치산이라는 평가에 짓눌려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비통하고, 애통하고, 비극적이고, 답답했다. 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납작한가? 서로 죽고 죽이고, 적대하는 세상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이 정한 선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 이어지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럴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다. 오랫만에 마음이 따땃해진다.  때때로 뭉클하고. 딸에게 아버지는 무능하고, 손해만 보고, 퍼주기만 하고 살았던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손해 보고 살아야 손해보지 않는다.....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