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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힘, 문자의 기적

 

나이들수록 책을 읽고 소감을 정리하기가 어렵다. 두렵다. 책 두께에 담긴 정보는 엄청난데, 다 이해했는지도, 다 기억할수 있을지도, 제대로 전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먹었는지도.... 그렇다! 하고 딱 잘라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다. 

 

읽으며 새길만한 부분에 믿줄을 긋고, 다 읽고 나면 필사를 해보지만... 원래도 좋지 않았던 기억력이... 더 감퇴하는 것 같다.

 

한글연대기는 한글이 주인공이다. 모두 11개 장으로 나눠 한글의 창제와 보급, 한문을 대체하는 과정, 외래어표기와 한글맞춤법 통일안 채택, 우리말 사전 편찬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은 통사이되 각 장은 구성은 주제로 나눠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글에 관해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는 걸 알고, 좀 부끄러웠다. 한글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의 원리가 기록되어 전해오는 문자라는 점, 창제자가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다는 점, 문자를 만든 이유가 애민에 있다는 것이야 익히 안다. 그런데 그게 다다. 우리는 정작 한글이 위대한 것은 아는데, 위대하다고 하면서, 그 위대한 글자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남아 K-컬쳐를 떠받치게 되었는지 제대로 모르고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작 한글날 하루, 국뽕에 취하고, 방송 프로그램명을 한글로 박아 놓는 것이 다다. 한글이 문자로서 소멸되지 않은 가장 큰 힘은 과학적인 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 요소인 구강 구조를 기본 자음으로 기호화하고, 세계는 하늘과 땅 그 사이 인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세계관을 다시 기본 모음 기호로 추상화하였다.  각각의 기본 모음과 자음 을 변형하여 만든 스물여덟 글자. 이 얼마나 깔끔한가? 한글이 배우기 쉬운 까닭은 제자의 원리가 지극히 합리적이서 그 논리를 이해하면 단박에 익힐 수 있고, 당연히 잊기가 오히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한글은 글자 자체의 내적 논리, 문자 자신의 힘으로 583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이 책을 읽고나면 한글이 과학성에만 젖줄을 대고 생명을 유지한게 아니라는 걸 깨닫을 수 있다. 앞서 우리가-아니 내 개인의 오해일수 있으나- 한글을 오해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한글이 조선의 기득권 양반들에게 배척당한고 무시당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도그럴 것이 한글을 언문이니 암클이니 하고 불렸는데, 한글을 폄하하는 조선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한글 창제이후 고종이 국문으로 공문서를 작성할 것을 선포한 1894년때까지 한글은 왕의 결정, 지시, 보고 등 공식 기록물은 한글로 작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이 한글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조선 왕실에서 한글의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백성의 교화.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학이고, 성리학에 기반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세종은 바로 백성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칠 도구로 한글을 생각해 낸 것이다. 세종의 애민정신의 요체는 바로 이것이다.

 

세종 이후에도 조선의 왕들은 쉽게 충효를 익히고 내재화하게 하는데 한글만한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성리학 서적을 한글로 번역해 전국에 뿌렸다. 이런 생각을 한다. 조선은 어떻게 500년을 이어갔지? 왜란을 겪은 후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도 망하고,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은 통째로 나라가 망했다. 두 차례의 호란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조선은 보수화되고 말기화 되었지만, 당쟁은 있을망정 성리학에 기반한 지배세력이 교체되지도,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게 바로 교화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교화에 한글이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저자는 그 부분을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지 않지만, 한자를 배우기 위해 한글을 먼저 익히고, 궁벽한 시골 구석구석 서당에서 임금이 펴낸 한글 번역서로 충효를 익힌 백성은, 세종이 바라던 교화된 백성으로 중세 봉건 질서의 충실한 수용자가 되었다. 저자는 조선 중후기 이후 서당의 증가는 생업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의 아아들을 가르치는 이들이 늘면서 "농민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을 광범위하게 뿌리내리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한자와 짝을 이룬 한글은  조선이라는 낡은 중세 질서가 어쩌면 외세의 침략과 간섭이 아니고서야 쉽게 깨지지 않게 했던 교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 교화된 백성은 농민지식인으로서 조선 후기에 이르면 동학의 주역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동학의 인내천, 평등사상에 주목하여 봉건질서 해체라는 근대성의 시작으로만 보는데 저자는 동학이 민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은 생활 기반이 같은 농민 지식인과 농촌 민중이 교화를 교리로 유교적 가치관을 공유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뭐 명줄을 조금 늘릴 수는 있었지만, 중세 질서는 무너졌다. 이 국면에서 교화 정책의 하부 실행자로서 중세 질서를 공고하게 하는데 기여했던 농민 지식은 새롭게 조성된 국면에서 중세 질서를 해체하는 혁명을 주도했고 그들 공론장을 장악한 것은 한문이 아니라 한글이었다. 이는 한글이 창제되었을 때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필연. 애초에 세종은 한글을 반포하면서 백성이 이 글을 배워 자신의 뜻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작 6년만에 한글을 배운 백성들은 세종의 뜻대로(?) 공사를 망령되게 하는 정승 하연을 비난하는 한글 벽보가 나붙었다. 물론 그 후 오랫동안 한글은 성리학의 세계관에 봉사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우리가 근대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다른 제국주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유라시아의 많은 나라중에 비교적 민중 수준에서 근대성에 대한 반발이 적었던 것은 나는 한글의 힘이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10년 봉건 국가 대한제국이 망하고 고작 9년 후 임시정부는 뒤도안돌아보고 주저없이 민주공화정을 채택한다. 아무도 이씨 왕실의 누구를 데려다가 왕으로 세우자고 하지 않았다. 놀랍지 않은가? 조선 건국 초반 성리학적 이상주의에 충만하던 때, 백성이 삼강오륜을 쉽게 익히도록 하는데 한글을 유용하게 써먹었고, 후에 정조는 뭔가 백성에게 왕의 생각을 알라고 싶을때도 한글 교지를 내렸다. 이제 근대성을 배우고 익혀, 근대적으로 생각하고 근대적으로 행동하게 하는데도 한글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한 공동체의 문자 해독 능력, 문자 접근성이 새로운 것에 덜 주저하게 한다. 나는 이것이 한글의 힘이고, K-컬쳐의 밑바당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