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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 천세와 만세

 

11회 즉위식에서 왕이 된 완에게 만세가 아니라 천세를 축원한 것을 두고 시비를 거는 글들을 봤다.

 

박구용 교수 설명이다. 이 드라마를 위해 한 말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를 말하다 나온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한, 중, 일 동양 3국에서 만세는 황제, 엄밀하게는 중국 황제에게만 할 수 있는 덕담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해석하면 만년 동안 오래오래 살라는 것. 그런데 이건 겉 뜻이고 어떤 의식에서 황제 앞에서 만세라고 했다면, 그것은 황제"폐하"에게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라는거야. 즉 봉건시대에 만세란 충성 서약인 것. 그럼 우리는? 우리는 황제 아닌데? 만세의 뜻과 의미는 같되, 조선은 황제국이 아니었므로 천세라고 했단다. 21세기대군부인 11회에서 신하들이 즉위한 새 왕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천세라고 하잖아. 바로 이제부터 당신을 왕으로 받들어 모시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알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안대군 완이 속한 왕실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 없지만, 일제 강점기 없이 조선왕조가 유지되었고 어떤 계기로 조선왕국에서 입헌군주 국가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이라고들 하더라. 이것부터 꼬투리 잡을 수 있다. 입헌군주제 나라 이름이 왜 대한민국이냐고. 영국의 국호는 United Kingdom이다. 유럽에는 의외로 민주 공화국이 많지 않다. 프랑스와 독일이 아주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이런 나라들도 다 입헌군주제 국가고 영문 국호로 킹덤을 사용한다.  민주주의 국가여도 정식 국호는 민국이 아니라 왕국인 것이다. 뭐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주제라고 설정하고 있는 것이지 그 나라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걸 뭐라는 건 좀...오바 같기는 하다.

 

어쨋거나 이 드라마 설정상 이안대군을 비롯한 21세기 이씨네 왕실이 고종의 후손이라고 하고, 고종이 별일 없이 천수를 누리고 승하하고 그 자손들이 대를 이었다고 하면 천세라고 하는 것이 아주 엉터리는 아닌 거다. 그런데 왜 이리 시끄럽지? 트집잡기?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만세에 익숙하다. 3.1운동 때도 만세를 외쳤고 8.15 광복 후에도 거리에서 만세를 외쳤다.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기념식에서 천세라고 하지 않는다. 식순 마지막에 양손을 치켜들며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다 만세를 외친다. 그럼, 천세는? 중국에 사대하느라 그런 것 아냐 하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고종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가 왕이던 시대 왕실은, 드라마와 완전히 다르게,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세도가와 중전 민씨. 그 오래비들의 부패와 고종 자신의 무능으로 솔직히 아무 일 없이 왕실이 이어졌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21세기대군부인의 설정은 그야말로 판타지인 셈이다.

 

나라꼴을 두고 볼수도 없고, 이런 나라에서 죽기밖에 더 할 것이 없을 때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백성들이 나선다. 그게 동학농민운동. 혁명이라고도 하지. 동학농민운동은 못난 고종이 청과 일본을 끌어들여 제 백성을 진압하게 하면서 실패한다. 만백성의 어버이라고 입만 열면 떠들던 사람이 외국 군대에게 제 백성을 학살하도록 했으니. 그꼴을 다 봤는데 조선인들이 왕에게 천세든 만세든 올리고 싶겠어? 그래놓고 10년 후 고종은 덜컥 황제국임을 자임한다. 대한제국.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곤룡포를 입고 사진을 찍고 황제의 위에 오른다.

 

그러면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워 황제국이 되었으니 후대 왕들의 즉위때는 천세가 아니라 만세를 불러야 한다고 한다. 맞나? 아니, 이건 실제 역사가 그렇고,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만든 세계관은 그게 아니라고 하면...? 실제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동학, 개혁 실패, 외세침탈과 폐망...이런 일 겪지 않고 쭈욱 그냥 별일 없이 조선이 이어졌다고 작가가 정한 것이면, 이 세계에서는 천세라고 해도 뭐 틀리지는 않지. 

 

다만, 어짜피 상상으로 만든 가상대체역사극이라면, 고증 이런거 신경쓰기 싫어서 만드는 퓨전사극일바에야 2026년에 이 드라마를 보는, 만세가 상식인 대한민국 시청자의 감성, 상식? 촛불과 응원봉으로 헌법을 어기는 대통령 두 번이나 탄핵해서 갈아버리는 민주공화국 시민들의 자긍심, 좀만 생각해주지...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 이 말 꼭 하고 싶어. 당시 시대 정신을 보면 조선은 임금이 혼자 다 하는게 아니고 의회를 통해 백성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지금 뜻하고 다소 다르더라도 입헌군주제로 가야했다. 하다못해 일본도 그리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황제임을 자처하고 홀로 대한제국 을 선언한 것은 명백한 퇴행이다. 이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야? 이제와서 황제국이었으니 대군이 아니라 친왕이어야 한다는 둥 하는 말도 참...우습고 웃기다. 나는 고종의 대한제국이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거든.

 

한 가지 더. 그럼 민주공화국에서 왕도 황제도 없는데, 왜 만세야? 그 답 역시 박구용 교수 주장인데, 동학농민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주권의식을 갖게된 사건이라네? 왕 너한테 주권 있는거 알겠는데, 백성도 주권자라는 생각을 담아 주권재민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리고 만세의 대상을 극적으로 바꿔버렸다는 해석이야. 왕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그리도 또다른 나인 백성, 요즘말로 국민을 위해 만세를 외치기로. 그래서 현재 만세를 하며 양팔을 올리는 것은 우리만 한다는군. 그럴듯해. 드라마 아닌 현실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만세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환대고, 추앙인 것이지. 그러니...그냥...만세라고 하지...누가 천세가 맞다고 고증했을까...사실관계는 맞을지 몰라도...대중들의 감수성과 감각에는 좀 무딘 사람이었나봐.

 

PS. 우석이 광팬이라 왠만하면 이 드라마 재밌게 보고, 아무말 안하려고 했는데...마지막 회 어떻게 하나 보고...총체적으로 좀 욕좀 해야겠다. 아이유, 변우석 이런 좋은 배우 데려다가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 어휴...

 

PS. 작가에 따르면 이 드라마의 설정은 드라마속 왕실이 문효세자, 즉 정조의 직계 후손이 대를 이어 조선이란 왕국의 왕실을 유지했다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정조의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한 왕도정치 복원이라는 개혁이 성공했다는 가정일 것이다. 그 뒤로 조선이 외세의 도발을 제 힘으로 극복하고 입헌군주제로 성공적으로 변모했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독립국으로서 국체를 유지한 나라가 제후국이라는 중국 중심 세계가 부여한 상징을 그대로 사용했을까? 음.... 그래서 작가와 감독은 역사를 알아야 하고 고민했어야 한다. 가상이든 대체든 퓨전이든 역사의 어떤 설정을 똑 따와서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거세해야할 요소들이 많고 그 과정에서 왜곡이라는 함정을 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좀 더 친절하거나...이 가문의 내력을 통해 드라마의 설정을 납득시켰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