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을 다시 읽어볼까? 하고 내가 말했던가? 요즘은 뭔가 생각하고 3초면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남편이 문신 다섯권이 완간되었다고 알려줬다. 글쎄...작가 윤흥길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 팔순 넘은 노 작가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간했다고 하는 기사를 링크해서 보내준 것이다. 아, 남편에게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구나. 학술서 말고...사회과학이나 인문도서 말고 그냥 소설을 읽으며 이 엉망징창 세상을 외면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었다. 그러자 남편이 이 소설을 추천한 것이다. 남편이 이 책을 읽은 것도 아니다. 그도 우연히, 생각없이 권했고, 나도 충동적으로 1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문신은 전라도 상곡이라는 가상의 깡촌에서 일제가 시작한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오히려 부를 늘린 최명배 일가의 이야기다. 최명배는 상곡 일대를 호령하는 천석군으로 재산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다. 양반이라고 알려졌으나, 작가는 명확히 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뼈대있는 대대손손 양반가는 아닌 것 같다. 양반이라고 쳐도 몰락했다가 혼란한 틈새를 수완으로 파고들어 잡안을 일으키고 부를 챙긴 것 정도일 것이다.
작가는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풍부하게 구사하며 소설이 언어의 예술이라는 걸 증명하였는데, 그건 작가의 의도였다는 인터뷰를 본 것 같다. 이제는 사라진 우리말, 사투리가 품고 있던 조상들의 언어 조탁력, 표현력을 보존 또는 구현하고 싶었던것 같다. 그런데 뭐 대단한 양반인척 호령하는 최명배 내외가 구사하는 말들은....정말...상스럽고, 저급하다. 말마다 절반이 욕이라서가 아니라, 와...사람을, 심지어 자식조차 막대하고 함부로 대하는데....말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명제로 보면 최명배는 양반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고상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양반이라서 몸에 밴 위선적인 점잖음하고도 담을 쌓았다. 양반이라고 폼 잡지만 돈 밖에 모르는 노랭이 구두쇠 부자의 본색을 이렇게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거의 물질에 집착하는 본능만 남은 아귀 같은 인물이다.
이런 최명배에게는 딸 하나 아들 셋이 있다. 이 중에 고명딸인 순금, 큰아들인 부용이 주인공으로 최가 내외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순금과 부용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간형이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사실성이 떨어져서 개인적으로는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저런 자식들이 나오지? 부모와 자식의 성격이나 삶의 태도가 1:1로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순금과 부용이 멀쩡해서가 아니라, 이 다섯권짜리 대하소설의 인물들이 생각보다 다채롭지 않고, 인물들 각자각자도 좀 평면적이어서....전체적으로 이야기가 그냥 납작했다. 끝까지 변하는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최명배의 조카로 이 큰 집의 집사노릇을 하는 진용은...진용을 포함해서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집안의 골치거리가 되는 둘째 아들 귀용이나, 귀용를 사회주의로 이끌었다고 최명배 내외의 원망을 한몸에 받는 배낙철 같은 인물들에게 작가는 별다른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사회주의를 잘 모르는 것같다. 그 시기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아는게 많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게 아닌게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귀용이나 낙철이 내 뱉는 말들은...이건 뭐 80년대 운동권들에게 퍼붓던 보수언론의 레토릭하고 다르지 않더라는. 그 밖에 그 집에 기거하는 섭섭이네와 같은 노비들과, 최명배의 무작시러운 세경에 시달리는 주변의 소작인들에게 작가는 여하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두 그냥 소품, 지나가는 사람 1, 2 같다.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순금에게는 참 많은 애정을 쏟는다. 광주로 가서 여학교를 다니던 중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인물인데, 작가는 인간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좋은 점을 이 인물에 투여하고 있는 것 같다. 순금은 부용과 부용의 처 연실 등 차례로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소설의 제목인 "문신"과 직접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즉, 진짜 주인공인 셈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작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했더라. 무신론자에 기독교에 대해 곱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좀 불편했다. 그래서 순금이 다니는 교회와 교회 사람들이 나오는 대목, 예배보는 대목은 읽지 않고 건너 띄었다.
특히나 이 소설이 단조롭다고 느낀 이유는 이거다. 소설의 배경은 1937년쯤부터 1945년까지로 짐작한다. 일제가 중국과 전쟁을 시작하고 제국주의 종말을 향하면서 탄압, 착취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상곡의 최명배 일가는....내가 아는 역사에 비춰보면....너무너무 평화롭다. 별 일이 없다. 최명배가 어쩔수 없이 개명을 하고, 어쩔수 없이 대포를 헌납하지만, 그것 말고는 소설 속 시대가 일제라는 걸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내가 이미 복잡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놀랍고 풍요로운 우리 말과 표현력을 빼면, 인물도, 서사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것은 우리 사회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소설을 통해 접하고 싶었고, 실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부용이나 순금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아니어서 선하고, 사리 분별도 하고, 배풀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 재산을 헐어 학교를 세울 궁리를 하고 추진한다. 실제 학교를 세웠는지는 나오지 않고 소설을 끝난다. 하지만 부용은 아버지의 헌납이 일제의 강요로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고 강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단받을 정도의 친일은 아니라고 해방 후 다시 만난 배낙철에게 말한다. 아...한국의 보수들의 친일에 대한 생각이 이 소설에서 부용의 입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
이 소설이 작가 개인으로서는 여러 고비를 넘어 완간한 것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 기자들이 쓴 것 처럼 아주 빼어난 문학적 성취라고 보기는 어렵다. 좀 빨리 완간을 했다면 모를까...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또는 나아가야할 방향과 관련하여 괜찮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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