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오랫만에 재미있게 집중해서 읽었다. 이덕일과 환단고기파들이 하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왜 말도 안되는지를 조목조목 집어주고 있다는 점, 이런 주장과 집단이 어디서 기원했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데 그 점도 좋았다. 더불어, 이 책을 쓰기 전에, 쓰면서 다 쓰고 모여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 젊은 역사학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알겠더라. 상대를 사이비라고 지칭한 것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보다 상대를 사이비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비학문적인 것은 아닌지, 그 안에 오만함이나 지적 허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이덕일류의 엉터리 주장이 그토록 오래 대중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일정한 세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자가 제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있음을 알겠더라. 역사학계가 대중과 소통하는데 소홀했기 때문 아니냐는 반성.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역사는 쉬운 것임을 알리는 방법이 과연 옳은가도 회의하면서 오히려 역사는 이렇게 쉽지 않다는 것, 사료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야 당연히 어렵지만 무엇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일 자체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하지 않으냐는 말도 있었다.
역사만이 아니라 인문학은 물론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해진 한가지 답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혼불멸한 진리도 없고. 결국 대중들의 지적 비판 능력, 즉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비판하는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신채호든 이병도든 누구의 주장이라도 한번 멈춰서 이 말이 맞을까? 의문이 나면 묻고, 답을 찾아보는 자세. 왜? 하고 의심해보는 것, 질문을 허용하는 사회.
역설적이게도 이덕일이 팬덤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환단고기 같은 황당무개한 위서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 것이야말로 일제 36년이 퍼뜨린 식민사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를 방증한다. 원인은 우리 사회가 21세기에도 아직도 전근대성을 탈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하긴 우주의 기운을 빌어서 혼이 비정상이 되지 않도록 국정교과서를 만들자는 자가 대통령인 나라다!! 탄핵 소추 당한 대통령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라며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막지 못하는 곳에서 이른바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저 노인네들이 저러고 있는 원인은 하나다. 박정희를 의심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질문이 자유롭지 않은 권위적인 사회에서 생각할 줄 아는 잔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인간들은 아주 쉽게 이덕일류 사이들의 포로가 된다. 얼마전 읽은 한국인의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참 잘 속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속지 않는 방법은 의심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다. 사이비를 막는 길은 따져보는 것이다.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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