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이야기까지 마치고 두 번밖에 남지 않은 왕좌게임 연작. 밤새 몰아보고 나서 드는 생각.
라니스타 가문은 이제 더 가계도를 이어그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디에 숨어 있는 타이윈의 자식이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은 이상 서세이의 자식들이 모조리 죽어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이들은 법(?)적으로는 바라테온이지만. 스스로 왕좌에 오른 서세이가 제이미와 다시 합방으로 아이 낳기를 시도할 수도 있겠고, 티리온도 뭐 맘만 먹으면 라니스터 족보를 이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드라마가 시작하면서 깔아놓은 밉밥 중에 라니스터 가계를 이을 후속 세대는 더 없다.
바라테온도 마찬가지. 스타니스가 죽으면서 공식 바라테온가도 씨가 말랐다. 혹시 로버트의 서자인 겐드리가 다시 나타날까? 자신이 바라테온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신녀가 왕의 피라며 피 뽑던 에피소드 후(피 뽑혔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더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이 모자라 보이는 남자가 무슨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받아 소환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말야. 뭐 어때? 죽은 사람도 살리는 판에. 그게 판타지 찍고, 보는 재미 아닌가?
반면 스타크 가문은 나름 실속있다. 이 드라마는 스타크 가문 수난사로 다섯 번째까지 이야기를 채웠으니 느낌으로는 스타크 가문도 멸문지화를 당한 것 같지만, 이번에 타가리엔의 핏줄로 밝혀진 존 스노우 빼고 여섯 아이 중에 셋이나 살아 남았다. 존 스노우도 절반은 스타크고. 게다가 처음 스타크 아이들이 어미가 죽은 늑대개 새끼를 하나씩 키우면서 시작한 이드라마는 돌고 돌아 결국 스타크 아이들의 성장기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첫번째 이야기에서 철부지 공주놀이에 빠져있는 통에 쥐어 박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던 산사는 이번 이야기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이" 같은 기운을 품어냈다. 정치판에서 산전 수전 공중전을 치룬 셈인데, 인질로 잡혀있다가 아버지 죽음을 직접 목도했고, 티리온과 강제 결혼에 램지에게 팔려가는 모진 운명까지...그 결과...산사는 눈 밭에서 고작해야 오합지졸 밤의 경비대원이나 그 보다 못한 야인들과 어울리며 상당히 자연친화적(?)인 경험밖에 없는 스노우보다 한결 도시적이고 복잡한 정치적 센스와 판단력을 지닌 매력적인 여성 지도자로 자랐다. 이런 산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번 여섯번째 이야기의 가장 큰 볼거리였고, 즐거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리아와 브렌도 마찬가지. 아리아는 지금까지 줄곧 검객으로서 실력을 연마하는 서사로 출연 분량을 다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브렌도 불의의 사고 끝에 부모를 잃고 고난 끝에 예언가로서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자기 형제들과 주변 사람들의 전사를 들려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스타크 가문은 아니어도 스노우의 친구 샘웰조차도 결국 스노우의 도움으로 문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스스로 찾았고, 이번 이야기에서 그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외가 있다면 존 스노우와 데너리스다. 둘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특히 죽었다가 부활씩이나 했기에 존 스노우에 대해서 사람들이 기대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9화 서자들의 전쟁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에 사령관답지 않았다며 실망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어찌보면 존 스노우는 처음부터 그냥 존 스노우였다. 다른 스타크 애들이 어린 아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이런 저런 일을 겪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면 존 스노우는 이미 서자로서 자기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던 어른이었다. 오히려 그가 부여받은 임무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즉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진짜 적을 직접 체험하고, 그에 대비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다.
또 한가지. 존 스노우는 네 번째 이야기에서 장벽을 넘어 온 야인들과 한판 싸우던 때 말고 한번도 나같은 팬을 흐뭇하게 할만큼 영웅적으로 자기 앞의 과제를 완벽하고 시원하게 "혼자" 완수한 적이 없다. 데너리스가 "용"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받고, 위기때마다 그 힘을 적절하게 써먹는 반면, 존 스노우는 그렇지 않다. 그는 시종일관 몸으로 떼운다. 적들 속으로 뛰어들고-적은 야인일때도 있고, 백귀일때도 있고, 이번에는 램지의 군대였다-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동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싸우며, 버티는 것. 그게 존 스노우가 지금껏 한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일전에 존 스노우가 윈터펠을 되찾기 위한 거병을 결정할 때도 산사에게 맥없이 설득당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이제 부활까지 했으니 뭔가 제대로 멋지게 동생들을 건사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복속시키며, 진군해 주기를 바랬나 보다. 10화까지 다 보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그런 존 스노우를 좋아한다는 것을.
전체적으로 올해 들려준 이야기는 애초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기대했고, 추론했던 범주 안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로 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짐작도 못한 것이 없어서....여전히 재미있지만, 뭔가 한 방이 빠진것 같은.....이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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