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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고, 흉칙하게 잘만든 서브스턴스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충격적이야!"

 

영화 보고 나오는데 앞서 가던 젊은 관객이 한 말이다. 그는 무엇을 보고 충격이라고 했을까?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역겨운(Disgusting) 영화였다. 보는 내내 인상을 쓰고 봤다.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라고 만들었다. 역겨우라고. 불편하라고. 그런 점에서 매우 잘만든, 아주 좋은 "예술 작품"이다. 

 

영화 제목 Substace. 한 때 오스카상을 받을 만큼 잘나가던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경력 관리를 잘못해서일까, 나이든 후 그저 그런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로 살고 있다. 그 쇼의 제작자는 더이상 시청자를 끌어오지 못하는 엘리자베스를 퇴물 취급하며 교체하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더 아름답고 완벽한 너로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에 흔들린다. 그렇게 건네 받은 약물 이름, 혹은 프로그램이  "Substance". 젊은 복제품 "나"를 만들어주는 이상한 "물질".

 

Substance에는 "본질"이라는 뜻도 있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본체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수는 본체인 엘리자베스의 형상(substance, 몸)만을 단순 복제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욕망, 무절제까지도 복제한 것처럼 보인다. 엘라자베스는 처방전이 정한 시간 이상으로  수의 시간을 연장하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수의 젊은 시간을 포기하지 못한다. 수 역시 파멸할 것을 알지만 본체를 잠식하며 쾌락을 탐닉한다. 인기, 찬사, 심지어 음탕한 희롱까지도 즐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든 엘리자베스는 젊은 자신을 방탕하게 낭비한 것이 아닐까? 수의 현재는 엘리자베스의 과거였던 셈이고, 초라한 엘리자베스의 현재는 그렇게 젊음을 써버린 수의 미래다. 역겹다.

 

이 영화의 제목이 Subtance인 것은 자본주의에서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우리 모두 물질 혹은 물건 취급받는 존재라는 또다는 은유, 혹은 비유일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엘리자베스는 언제든 젊은 "것"으로 갈아 치울 수 있는 대상이다. 그 동네 남자 혹은 시청자들에게 수는 인체 각 부위가 완벽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인형일 뿐이다. 영화의 설정 안에서만 그러지 않는다. 쇼비즈니스 시장에서는 유난히 아름다움, 젊음에 비싼 값이 매겨진다. 사장의 행위자들은 젊고 아름다운 피조물을 상품화하여 팔고, 나이들어 상품가치가 떨어지면 버린다. 엘리자베스처럼. 일상의 노동 시장에서 우리가 학력, 대학, "사"자 붙는 직업에 집착하는 건, 그것으로 나라는 인간의 시장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징그럽다. 보기가 쉽지 않다. 흉칙하다. 피가 튀고 등뼈를 따라 몸이 갈라지고, 온갖 장기가 삐질삐질 징그럽게 쏟아진다. 여러차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더듬는 대중들의 시선은 역겹고, 저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의 추레한 욕심은 흉하고,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늙은 몸을 견디지 못하는 수는 아주 못되처먹었다. 아름다움을 돈으로 사고, 젊음을 팔아 돈을 벌고 그걸 거대한 쇼무대에 올리는 인간 군상들....감독, 참 냉정하다. 감정 이입할 대상이 없다. 제발 그만해라...어쩌려고 그러니, 엘리자베스야, 수! 그만하지!! 이러면서 봤다. 끝내 멈추지 않더라...어후...힘들어...죽는줄 알았다. 진짜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뜬금없이 내 최애 배우의 미모를 성찬하는 걸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미모에만 취해서 미모에만 머물까봐 두렵다. 엘리자베스를 그렇게 만든 건 모두가 너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속삭임이었다. 악마의 속상임. 내 사랑 고백도 독이 될지도 모른다. 난 내 배우가 나이답게 늙어가고, 나이에 따라 깊어지는 얼굴로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진심으로. 형상(Subtance)이 아니라 본질(Substance)! 본질을 꿰뚫어 볼줄 아는 사람이 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