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나라 . 고 이선균 배우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본 영화. 생각보다 소소하고 작은 영화였다. 대사로 많은 것을 처리하더라.
정인후(조정석 분)과 전상두(유재명 분), 정인후와 계엄사령관 정진후(이원종 분)가 그냥 저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이 대목부터 설득력이 좀 떨어졌다. 둘 둘 사이에 좀 더 깊은 서사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좀 난데 없었다.
이선균이 분한 박태주 대령은 전형적인 군인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전형성을 꼭 굳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에서 찾은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 명령이 불의여도 군인이므로 복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전상두 측 검사가 하게 한 것은 뭔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정인후는 박태주에게서 아주 고지식해서 가족은 챙기지 못하면서 소외된 이웃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아버지를 봤다. 그래서 원래 잘하던 세치 혀로 박태주를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싶었다고 이해했다.
박태주를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유자재로 거짓말을 하고 괘변을 서슴지 않는 소피스트 변호사 정인후와 대립하게 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리라. 실제로 박태주의 그런 꼿꼿함이 울림을 주기는 했다. 정인후는 박태주를 변호하면서 변해가는 혹은 본래 제 자신을 찾아가는 극적 인물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박태주가 왜 정인후가 찾아낸 살 길을 거부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상사인 대통령 시해범 김영일에 대한 충성은 아닌데, 결국 복종한 것은 그의 명령이니 충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김영일이야 나름 대의가 있었겠지만 박태주에게 명령에 복종하는 것 말고 어떤 대의가 있었는지, 그걸 대의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거짓말하지 않기, 나 살자고 남을 팔거나, 모략하지 않는 사람이 드문 세상에서 그런 인간을 스크린에 불러내 보여주고 싶었나? 그러기에는 또 배경이 되는 사건이 지나치게 크다. 우리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큰 사건인 박정희 암살과 12.12쿠타를 그런 정도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 삼은 건 뭔가 썩 잘 어울리는 선택은 아니지 않은가?
아, 잠깐. 전상두는 박태주가 명령에 복종하는 배신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죽일 이유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정인후와는 또다른 편에서 박태주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상두 역시 이 영화 내에서 왜 쿠테타까지 가는지, 재판 내용을 직접 도청, 감시하고 쪽지를 전달하면서까지 박태주를 죽이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실제 벌어진 역사 사실이나 군내에서, 그리고 당시 정치판에서 전상두의 급이 맞는 맞상대는 김영일, 그러니까 김재규여야하지 않나? 감독은 왜 이 드라마를 김영일의 영화가 아니라 박태주의 영화로 만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박정희 암살에 직접 연루된 사람을 다룬 영화는 드물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다. 거기에 얽혀든 사람들의 고뇌, 비극, 그들을 살리고자 했던 사람들과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궁금증을 푸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고 이선균 배우는 말 많고 시끄러운 정인후 조정석과 대비되는, 말 없고 진중하며 속을 알 수 없는 박태주를 정직하게 연기한다. 감독이 욕심을 덜 부렸다면, 박태주의 캐릭터가 좀 더 다면적이었다면 고 이선균의 연기가 더 빛날을 것이다. 아닌가? 감독이 좀 더 욕심을 부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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