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4일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4개월 만이다. 12월3일에 내란을 일으킨 우두머리는 123일째 되는 날 대통령 직에서 쫓겨났다.
12월 3일 그 밤, 야당 지도자 이재명은 유튜브 생방송으로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갔고, 군인들을 몸으로 막고, 의원들 등을 밀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여 보냈다. 다음날 새벽 1시 2분,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마음 조리며 그 장면을 TV로 지켜본 나는 이후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12월7일 국회의 제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날, 구름 같이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로를 가득 매웠다. 그 중에 한 사람이었던 나는, 끝내 의결 종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걸 지켜보며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려는데, 여의도 공원에서 신나는 타악기 소리가 들렸다. 젊은이들이 낯설지만 흥겨운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브라질리안 전통 타악기 연주 모임, 호레이. 그들의 장단과 추임새를 넋을 잃고 보다가 그들을 따라 국회의사당 앞으로 다시 갔다.
와~~ 이런....
젊은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윤석열 탄핵을 추임새로 넣으며 흥겹게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질타하면서도 그들의 몸짓과 노래에는 생기가 넘쳤다. 이리도 발랄할 수가.... 세상에 케이팝과 파면 구호가 이렇게 박자가 잘 맞다니....정말 신세계였다. 와...아~~ 쉽게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나는 얼마나 게으른가....가.... 감동...
사실 12월 7일 추웠던 그날 밤 우리 아이들을 보고 우리가 이기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히틀러가 되려한 자를 쫓아냈다. 물론 그날의 확신이 현실이 되기까지 괴로움이 많았다. 분노를 참는 수고는 또 어떻고?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프로메테우스처럼 간 쫄아드는 고통이란....다음날 다시 절망 대신 희망회로를 돌리며 버티는 일이란....입에서 쓴내, 단내가 다 났다. 힘겹게 희망을 끌어올리기 위해 태우는 애...그런 하루하루 123일을 지나 다다른 4월 4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다. 직전의 국가, 대한제국은 황제의 나라였다. 봉건국가. 1919년 3.1운동 직후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군주정이 아니라 공화국을 국체로 선택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왕족 누구를 명목으로라도 세워 다스리는 그런 나라는 1919년 이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단호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30여분 전만해도 나는 남에게서 이식 받은 민주주의를 진짜 민주주의로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이라 이상하다고 하려했다. 아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미 106년 전에 우리가 고른 것이다. 인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공화국은 남이 가르쳐주거나,억지로 건네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자랑스러운.
지난해 12월 7일 우리의 승리를 믿으면서도 진짜 이기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는데는 고통이 따르고, 그 사이사이 실패할까봐 두려워 했듯이, 우리 민주주의도, 우리의 공화정이 걸어온 길도 가시와 자갈이 그득했고, 그런 길을 걷는 건 고통이었다. 일제의 지배, 분단, 내전, 군부독재...그 사이사이 저항과 항쟁...탄압과 학살...실패...그래도 다시 저항하고....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지?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이상한 인민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성공이 예정되어 있으되, 수없이 좌절하고 실패하였으나 지지치 않고 민주주의를 외치고 싸운 끝에 성공에 다다른 것이다. 이 다음 길, 미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다. 많은 나라에서 공화정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윤석열의 등장과 퇴장도 크게 보면 세계적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위기를 우리는 피흘리지 않고, 물론 서부지법 난동이라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사건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평화적으로, 법이 정한 테투리에서 위기를 수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이, 제도가 완벽해서는 아니다. 얼마나 허술하고, 구멍이 많은지,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엘리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이번 내란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아는 것 같다. 우리는 큰 나라도 아니고, 자원이 많지도 않고, 게다가 분단되어 있는 나라다. 주변에 도와줄 나라도 없다. 이러니 1987년 만들어진 제6공화국의 현실, 허락한 제도 안에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으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우리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는 같이 공멸한다는 것을. 현재를 있게하는 틀을 지켜 급한 불을 끄고, 그 틀을 고치는 것은 천천히 상태를 봐가며 하지 않으면 버티던 기둥마져 무너진다는 것을. 이런 위기감에 대한 암묵적 합의. 이게 주권자로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진단이었고, 그래서 기초를 망가뜨리지 않는 한도에서 수습하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견뎠던 것이다. 우리가 뭐 대단히 정의롭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할 줄 아는 지혜는 있다.
사람들이 고맙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켜준 사람들이.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준 시민들이. 이후로도 숱한 논란과 좌절이 기다리겠지만, 최소한 윤석열 같은 망상종자를 리더로 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합의가 지난 4개월 동안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는 정말 내 나라다. 건드리면 가만 안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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