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반전이 많은 영화라고 했다. 반전이 많은 그 영화는 중국 원작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다. 친구는 이 영화가 그 영화의 한국판인줄 몰랐다.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다른데 있다.
요즘 선재 앓이중이다. 변우석 배우에게 빠져서 덕질중이다. 작년에 얼핏 이영화 개봉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보지 않았다. 특별히 챙겨볼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고 변우석의 예전 출연작을 찾다가 이 영화에 변우석 배우가 출연한 걸 알게 되었다. OTT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그러다 재개봉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 순전히 변우석 배우 때문에 보러갔다. 자, 이제부터 반전이다.
이 영화에서 변우석 배우는 엄밀히 말하면 주연이 아니다. 조연이다. 두 여자 하은과 미소의 우정에 끼어든 이방인. 처음에는 하은과 얽히고 자연스럽게 영혼의 단짝인 미소하고도 얽힌다. 하지만 영화는 동성애가 아닐까 싶을만큼 강하게 끌리는 두 여자의 우정을 쫓는다. 진우와 미소 사이에 있었던 일(스포일러) 때문에 파탄 직전까지 가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구원자가 되고 끝내 안식하게 해주는 것은 진우가 아니라 하은과 미소다. 진우는 둘이 노는 호수에 던져져 잠깐 파문을 그리다 가라앉는 돌맹이일 뿐이다.
그래서 불만인가? 아니다. 반전은 이 영화 자체가 지닌 서사의 힘에 있다. 변우석을 보러 갔지만, 변우석을 잊을 만큼 깊이 몰입하며 봤다. 후반부에 이르러 객석 이곳 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 친구가 내게 조용히 화장지를 건냈다.
중국 원작에서 진우는 훨씬 "모호해서 나쁜" 남자라고 한다. 진우를 대하는 미소의 태도도 좀 애매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원작의 그런 군더더기를 말끔하게 제거하고, 미소와 하은의 관계에 집중한다. 물론 미소와 진우가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하은에게 말하지 않아 생긴 오해로 빚어지는 일들이 둘을 멀어지게 하기도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하은에게 재주와 재능은 다르다고 말하는 진우의 무심함은 하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이 대목에서 배우가 변우석이라도 그만 욕 할 뻔했다. 죽을래? )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진우는 끝까지 하은 곁에 머물고자 했던 평범하고 "착한" 남자다.
이 영화는 여성영화다. 여성주의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화 전반에서 여성들의 우정은 외면받아 왔다. 우정은 모두 남자들의 것이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반가웠다. 여자들이 주인공이고, 어떤 사건을 해결 또는 해소하는 것도 중심을 잡는 것도 여자들이다.
특히 미소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 영화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고만고만 예쁜 언니들의 말간 동화에 머룰지 않도록 한 건 다름아닌 미소의 서사다. 미소가 하은 곁을 떠나 서울에서 겪는 일들을 하은이나 진우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은과 미소가 같이 간 여행지 부산에서 숙소와 식사를 두고 겪는 갈등은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어쩌지 못하는 계급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같았다. 영화가 아닌 진짜 현실이라면 둘은 이후 다시 접점을 찾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짐작한다.
어쨋거나 미소에게 이 정도의 서사를 부여한 것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미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은도 진우와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용감한 선택을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온 하은을 미소는 두 팔 벌려 포옹하고, 하은이 남긴 모든 것을 자신의 삶 속으로 품어 안는다. 아름답고 진한 진짜 우정...아니 사랑...
변우석 배우가 고맙다. 이런 좋은 영화를 보도록 계기를 만들어줘서.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은 일이 생겨....
출연을 거절한 남자배우들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 규모로 대단한 스타 배우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이름 있는 배우가 아니라도 이렇게 내놓고 여자들이 빛나는 영화, 두 여자 주인공에게 가려지는 영화를.... 기획사들은 자기 배우게게 시키기 싫겠지. 보통 배우 자신도 꺼리지 않을까? 그래서 더 고마운 거다. 출연해줘서. 감독도 제작사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배우를 좋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팬들에게는 큰 기쁨이거든.
특별 상영중이다. 놓치지 마시고 꼭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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