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게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추라! 팔레스타인인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 전쟁의 두 번째 세기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새롭고 한층 더 파괴적인 접근법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 그리고 페르시아만의 절대 왕정에서 새롭게 발견할 우방들과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라시드 할리디의 이 예언은 적중했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정말 "새롭고" "파괴적"인 양상을 띄고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들에게 벌이는 보복은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지 시전 중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슬프고 가슴 아팠다. 

 

로스트 메모리즈. 장동건이 주연한 영화다. 한국이 아직도 일제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는 가상의 어느  시대가 배경이다. 영화와 같이 일제가 패망하지 않고, 100년이 넘게 식민지 상태라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이 책의 저자 라시드 할리디처럼 망명지에서 조선 100년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해방투쟁의 짧은 승리와 긴 좌절을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저자는 뉴욕 칼럼비아 대학에서 현대 아랍을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다. 하지만 이 책은 정통 학술서가 아니다. 연구자이므로 당연히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간간히 본인의 가족사, 개인적 체험까지 아울러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을 들려준다. 이 점이 다른 연구서와 다른 색다른 울림을 준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이 전쟁의 한쪽 당사자이기도 한 할리디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뭐라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깊은 통한이 느껴진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우리 역사에 비춰 팔레스타인 민족이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1917년 벨푸어 선언부터 2017년까지 100년을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한 여섯번에 걸친 선전포고 정리하였다. 솔직히 단편적인 뉴스로 밖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을 접하지 못한, 또는 무관심했던  처지에서 그 먼 곳에서 100년 동알 일어난 일을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건 저자나 번역자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외한이어서다. 그런 가운데서도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덕분에 이 전쟁의 기원, 시온주의의 실상, 영국과 미국 같은 제국주의자들의 만행, 중동 국가들의 봉건성과 복잡한 이해관계,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 진영 내부의 분열과 한계를 알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이 1차 대전 직후 시온주의를 후원한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성서의 땅을 "돌려준다"는 낭만적이고 종교적인 친유대주의적 열망과 영국으로 유입하는 유대인 이민을 줄이려는 반유대주의 기대가 섞여있었지만 지정학적인 전략적 이유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을 지배하기를 원했고, 이것이 핵심 동기라는 것이다.

 

저자 말대로 영국이 움직인 것은 시온주의가 옳아서나 유대인에게 품은 동정심 같은 이타주의가 아닌 것처럼, 2차 대전 후 팔레스타인 땅에 난데 없는 유대국가가 유엔 결의를 등에 지고 등장한 후 이슬람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역시 종교적, 인종적 동질감 같은 것이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아랍국들은 명시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의 대의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봉건 왕실의 이해관계가 우선이었다. 물론 그 나라 이슬람 민중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고 후원했으나, 정부는 자기 나라 민중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팔레스타인 민족운동 내부의 사정도 녹녹치 않았다. 수시로 끼어드는 이기심, 권력욕으로 분열하거나, 심지어 아라파트 조차 근대성, 민주주의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옛날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PLO가 외교에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국제 시민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덕분에 제1차 인티파다로 얻은 도덕적 권위와 명분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슬로 협정은 종이 쪼가리가 되고, 당초 협상의 목표였던 평화와 화해는 커녕,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게 되있다. 이렇게 PLO를 장악한 파타가 지리멸렬해 지자 등장한 세력이 바로 하마스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을 분열하게 하려는 책동의 도구로 전락하자 이에 반발한 무슬림형제단의 일부 세력이 중심이 되어 등장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PLO를 매우 비판하고, PLO의 자치당국 노선에 반대했으나 2005년 극적으로 노선을 수정해 선거에 참여해 대승을 거두면서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하마스의 자치당국  참여를 극구 반대하였고,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중적이고 비열한 분열 책동이 낳은 결과다. 팔레스타인 "자치"라는 것은 허상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주적인 선거로 대표를 뽑아 자치를 하겠다고 하자 아예 트집을 잡으며 판을 깨버렸고, 하마스는 협상 노선을 그만두고 무장투쟁으로 복귀한 것이다.

 

오늘 잠시 기사를 검색해보니 한국 언론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 정부를 거부한다는 식의 기사를 내놓고 있다. 믿을 수 없다. 하마스가 많은 지지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게 누구에게 유리한가를 보면 안다. 이스라엘이 바라는 소식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팔레스타인 서서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면서 10대 시절 1960년대 중반에 3년 동안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경험을 털어 놓았다. 이런 인연이...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서울 살이 경험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저자의 바램처럼 식민지배와 전쟁, 분단으로 크게 고생하고 있는 역사를 물려 받은 사람으로서 비슷한 처지인 다른 민족의 이야기에 몹시 크게 공명하였다.

 

이제 중동 현대사를 좀 더 거시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20세기 초 세계사의 빌런은 영국이었고,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세계사의 빌런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건투를 빈다. 버티시라. 제발.... 그래서 꼭 해방과 평화를 이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