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세포들의 연합 혹은 융합체라던가? 따로따로 살던 세포들이 결합해서 각자의 특장점을 살려 생명현상에 기여 한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어쩌면 서로 기생하고 있는 것인지도. 인간도 원천적으로 기생생물들의 연합체일지도 모르겠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설정은 생명체의 운영 원리에 관한 은유에 가깝다. 작가와 감독이 의도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 기묘한 동거다. 애초에 인간의 뇌를 먹도록 설계되어 있던 기생수 한마리가 실수로 살해 당해 죽기 직전의 수인의 뇌를 먹으려다 숙주를 살리는데 기운을 다 쓰는 바람에 수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서로 의지하는 상태가 된다.
후반부에 가면 이 기생수는 일단 인간의 뇌를 차지하고 나서 살다가 숙주가 죽음에 임박하면 숙주를 빠져나와 다른 인간 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수인의 몸에 깃들었던 재수 없는 기생수(?) 하이디(설가우가 지어준 별명)는 하필 또 주변에 옮겨갈만한 인간 개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수인을 살려 머물기로 결정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수인과 하이디의 동거는 예상하지 못한 길로 나아간다. 다른 기생생물들은 수인 몸의 하이디를 변종이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면 하이디는 처음부터 변종이었던 것이 아니라 수인과 동거하면서 변이가 일어났다. 그 변이의 결과를 다른 기생생물들은 자신들과 구분짓기 위해 변종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외모의 상이점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를 통째로 지배하는 다른 기생생물과 달리 하이디는 차츰 수인의 뇌, 수인의 생각, 수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 수인이 미쳐 깨닫지 못하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수인 역시 본인 필요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수인을 지키려는 하이디에게서 맞서는 법을 배운다. 흥미롭게도 수인과 하이디는 애초에 각각 독립적이던 세포들이 모여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생명으로 질적 변환하는 수억만년 동안 벌어진 진화를 압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생명 현상의 시초에 각각의 세포들이 각자 완벽하고 완전했으면, 모일 필요가 있었을까? 기생생물은 번식을 하지 못한다. 번식은 커녕 오래 살지도 못한다. 숙주가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숙주로 삼아 인간의 뇌를 차지하고 생명을 유지하기로 한다. 그것뿐이다. 지배를 해도 인간을 알지는 못한다.
하이디는 한 발 더 나간다. 원하던 것도, 계획한 것도 아니다. 우연이었다. 마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인간이 칼에 짤린 수인이었던 것은. 그 우연의 결과가 '반쪽이 기생생물' 하이디고, 하이디는 몸체인 수인을 세상의 위협에서 지켜야 하니, 반쪽이 처지에서 온전한 다른 기생생물보다 훨씬 강해진다. 덕분에 수인도 강해진다.
생명체는 완전해서 강한 것이 아니라, 불안전하니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 남는 법을 찾고, 다른 생명체를 인정하고 타협하고, 서로 변화했다. 그 변화가, 변이가 이질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세포를, 생명을 모두 살아 남게 한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살기 위해 이해하고 협력한 덕분에 강해진 것이다.
기생은 함께 사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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