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게

호치민 평전

사회주의 국가의 영웅적 인물에 관해 평전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자료가 풍부하지 않아서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우상화하는 자료는 넘치지만, 쓸만한 것은 없다.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식민지배자를 상대로 민족해방 투쟁을 하면서 계급투쟁을 병행했다. 둘 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철저히 감춰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름조차. 그러니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을리 없다. 유력한 자료는 역설적으로 식민지 제국이 체포와 감시를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료뿐이다. 독립과 해방 후에는 찬양 일색, 읽으면 닭살돋게 하는 교언영색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많지도 않은 당의 기록물도 내놓지 않는다. 폐쇄국가의 특징이다. 호치민 평전은 이런 쉽지 않은 한계에 도전한 최선의 결과다. 한때 적국이었던 미국 외교관 출신 윌리엄 J.듀이커가 이런 어려운 일을 해냈다.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점은 그에게 호치민을 신으로 추앙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걸 말한다. 반대로 깎아 내리고 악마화하지도 않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호치민에 매료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사이공에 파견 장교로 일할 때, 호치민은 적국의 지도자였으니 충분히 미워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평전을 읽으면 그가 호치민에 매혹당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호치민은 저자의 말마따나 복잡한 국제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읽고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실용주의자였다. 이 점이 당시 베트민의 다른 지도자와 확연히 다른 점이고, 저자는 이것에 끌린 것 같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저자는 매우 신중해서 선을 넘지 않는다. 많지 않은 객관적 자료때문에 과하게 추론하고 앞서가며 흥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치민은 1960년대 초가 될때까지 자신이 전설적인 소비에트 활동가 응우엔 아이쿠옥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프랑스는 내내 이 사실을 눈치챘지만,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에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호치민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독립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을 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야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활동을 치적으로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 역사에서 호치민은 건국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존경을 받는 인물이고, 베트남 현지에서 읽히는 그의 전기는 거품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살아 생전에 그에 대한 찬사는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이 생전에 이미 스스로 우상화했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계획적이기도 했으나, 그냥 호아저씨 정도의 친밀감과 사랑을 받는 것에 그쳤다. 또하나, 호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만든 당을 소유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호의 동료 또는 후배들은 스탈린이나 마오라면 당장 숙청했을 만한 행동, 즉 종종 호를 무시하거나, 조롱했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비판한 이유는 지나치게 온건하다는 것, 외교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달리 호는 당을 1인 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로 이끌었고, 스스로 그 당의 일원으로서 행동했고, 당이 원하는 것에 맞춰 말하고 행동했다. 

 

소련과 중국과 베트남이 놓인 상황이 달라서이기도 했다. 둘은 혁명을 성공함과 동시에 시작부터 강대국이었다. 베트남은 프랑스에서 독립했으나 분단됐다. 민족 통일까지 30년가까이 걸렸다. 생전에 호가 우상화의 영화를 누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호치민이 당을 사유화하고, 모든 결정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면? 베트남은 아직도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호치민이 본인 주장을 절제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회주의지배체제를 우선 공고히 할 것인지 민족해당투쟁을 먼저 할 것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당내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호치민이 살아 있는 동안 어느 누구도 호치민을 뛰어 넘어 권력을 강화할 수 없었고, 그 덕에 힘을 덜 낭비하고 미국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한 지도자의 절제란 이런 것이다. 일정정도 계산이었다 하더라도 전쟁통에 고생하는 인민들과 다르게 호위호위식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인 소련과 중국의 대 베트남 정책이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개뿔~! 두 나라는 철저하게 자국 중심에서 베트남의 대제국주의 전쟁을 바라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둘이 서로 다투고 갈등했다. 호치민이 나서서 사회주의 연대를 위해 노력할 것을 호소할 정도로. 이 책에 이런 두 나라의 의중과 선택이 잘드러난 것은, 호치민이 가급적 전쟁보다 외교로, 협상으로 목표에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호치민이 국내파가 아니라 프랑스로 건너가 미국에서 머물며 국제사회의 감각을 익힌 것은 베트남으로서는 천운이었다. 그 덕에 호치민은 베트남 혁명을 베트남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선택했고, 이를 위해 미국에게도 직접 호소하고, 중국과 소련을 부지런히 오갔다. 그 덕에 외교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책 다 읽고 나니 베트남에 가고 싶네.

'길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생수: 더 그레이, 생명 진화에 관한 은유  (1) 2024.04.21
정돌이  (0) 2024.03.31
조개줍는 아이들  (0) 2023.04.02
스스로 구하라  (0) 2022.12.04
안중근 의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0)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