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게

스스로 구하라

https://www.hani.co.kr/arti/culture/movie/1070067.html

 

어둠 속에서 진실을 읽는 자는 누구인가

[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올빼미

www.hani.co.kr

관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2013년 개봉작이다. 그네가 대통령 된 직후였다. 영화를 보고 몹시 답답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다. 수양이 왕이되는 건 정해져 있다.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안다. 영화는 미천한 관상쟁이가 어쩌다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은연중에 그는 반수양파와 가까워지고 정서적으로도 그러하다. 한명회 패거리가 무도한 쿠테타 세력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영화는 관상쟁이가 관상은 잘보지만, 수양의 얼굴을 모르는 바람에 스포일러대로 가게 되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풀었다. 관상쟁이는 남의 얼굴을 볼줄은 알지만, 그 얼굴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쟁이로서 유능할 뿐만 아니라 사리판단까지 바르게 할 줄 안다해도 수양이 왕이 되는 건 막지 못한다.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래 할 수 있는게 없다....영화는 꽤 흥행했지만, 기분이 나빴다. 우리의 실패는 이미 와버린 미래였으므로.

 

올빼미. 보고 나서 역시 답답했다. 미학적으로도 좀 어설프고, 좀 짜집기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 보고 별 감흥없이 흘려보냈다. 위에서 옮긴 평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했다. 그리고 아프다. 실망시킨 리버럴의 일원이니까. 우리의 실패는 현실이지만, 마주보는 일이, 인정하는 일이 힘들다. 현실은 우리가 인정하고 하지 않고와 상관없는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본능적으로 이 영화에 "재미없음", "그저 그럼" 딱지를 붙이고 넘긴 것은 실패한 우리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였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지난 선거 후 마음 둘 곳 없이 살고 있다. 철들어 투표권이 생긴 후 지지하고 본능적으로 따르던 리더가 없던 때는 없었다. 이념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그토록 지지하고 선망했던 그분에게도 몹시 실망해서, 그의 그 리버벌함이 젊잖음이 그때는 좋았으나, 그것때문에 이리 되었다 싶어서... 마음이 찢어진다. 원망을 하지 않으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다. 이제 와 탓하면 무엇하랴. 또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매번 꾹꾹 눌러두고 있다. 이미 충분히 책임 지고 있다.  거기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그가 당하는 고통은 내 고통이기도 하니까. 각설하고, 이 글의 해석에 동의하면서, 한 가지만 덧붙인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4년 후 인조는 죽었다. 영화의 세계관에서 인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걍팍하고 성마르며 아들과 손자 며느리까지 죽어 없애면서까지 자기 권력에 집착했던 자의 명줄을 끊은 사람. 실낱같은 희망. 4년 후. 

 

'길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치민 평전  (0) 2023.08.14
조개줍는 아이들  (0) 2023.04.02
안중근 의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0) 2022.11.05
고 정태인, 아름다운 사람  (0) 2022.10.22
위험천만한 중화민족주의  (0) 2022.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