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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줍는 아이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소설이 있다.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영화는 보지 않았다. 내게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다. 당연하다. 20대였으니까. 이해가 안되었다. 뭐 이래?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 온 낯선 이방인이랑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미쳤네. 불륜이잖아! 

 

단 한번의 영원한 사랑을 꿈꿀 만큼 어리석고 어렸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다. 90년대 한국 사회는 남녀관계에 관한한 매우 보수적이었다. 민주, 자유, 평화, 여성주의를 추구했지만, 그 보수적 인간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남녀가 아닌 인간의 다양성, 포용성을 내면화하기에 폐쇄되어 있었다. 그런 수준이었던 영향도 있었을터.

 

여동생 집에서 소설 몇권을 빌려왔다. "조개줍는 아이들"은 그 중 하나였다. 아무런 정보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다. 논쟁적이지 않았다. 복잡한 사건사고가 벌어지지도 않는다. 60대 한 노년의 여성의 삶, 사랑, 가족, 이웃과 보내는 일상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차분하게 펼쳐진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처음 몇 장은 하도 별 일 없어서 재미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1권 중간을 넘기면서는 뭐랄까...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듯 읽다보니 동생 집에 없는 2권을 선배에게 빌려 읽고 있었다. 1권은  2005년에 한국서 다시 나온 것이고 2권은 1992년 1쇄본이다. 번역자는 같다. 오래되었을 거라며 당신 집 서가 구석에 꽂혀 있던 누리끼리 변색된 책을 건네주었다. 정말 말그대로 90년대 풍이다. 그시절 책은 다 이랬다. 작은 활자. 갱지. 가볍고. 

 

이 책은 영국에서 1988년 처음 나왔고, 미국에서 54주간 베스트셀러였고 89년에는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였다고 한다. 찾아보니 중년 여성들이 매우 열광적으로 애독했다고 한다. 그럴만하다. 주인공 페넬로프는 중년 이상, 노년에 다다른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여겨질만한 구석이 많았을 것이다. 딱 "바로 나!"가 아니라면 노년을 맞이하면 저렇게 살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매우 지적이며, 우아하면서도 아주 강인하고, 독립심 강하고, 이타적이며, 끝까지 삶의 중심임을 자각하고 선택하는  페넬로프는 지금 봐도 대단히 멋지다. 

 

페넬로프가 살았던 시대는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시대와 4~50년 차이가 있다. 공간 배경도 다르다. 문화는 당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지금 페넬로프의 선택은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다.

 

페넬로프의 세 자녀 중에서 둘째 딸을 빼고 다른 자식들은 엄마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한다. 젊으면서도 젊지 않다. 페넬로프는 늙었지만 젊다. 영국 중산층 가족들이 부모 재산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과 갈등, 태도는 시대, 배경 "차"를 의미없이 만드는 것 같다. 거기도 사람 사는 건 똑같구나...싶은거다. 신선한 것은 오로지 페넬로프다.

 

이 소설에 열광했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페넬로프와 같은 자세로 살며, 자식이 아닌 끝까지 자기 자신의 행복을 기준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책이 처음 나온 후 35년이 지난 한국에서는... 많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는 본인의 힘으로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했던 사다리는 더이상 없다. 이미 상속 자본주의에 접어들었고, 부모가 가진 것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상이다. 페넬로프 같은 선택을 하는 부모가 있으면 아마 노망난 늙은이 취급 당할 것이다. 그 전에 그런 결정을 할 줄 아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생에 한번 뿐인 잊지 못할 사랑"이 80년대 말, 90년대 문학계에서는 유행이었나 보다. 서구에서는. 그리고 이제 50대 중반인 나는 가능한가가 아니라, 그런 사랑, 그런 삶을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고 중년의 그 사랑이...혐오스럽다고 느꼈다. 이제 남의 사랑을 혐오할 권리는 없다는 걸 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사랑은 젊은 것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사랑을 묻어두고 열심히 세속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폐끼지 않고 말이다. 물론 페넬로프와 리처드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이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를 줬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비난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든 책임지면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또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페넬로프라면.

 

어마마한 문제적 작품이 아니라 편하게 읽은 영국의 대중소설이다. 읽는 내내 편했다. 페넬로프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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