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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돌이

열 네살 소년이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을 한다. 흘러흘러 서울 경동시장까지 온 소년은 상인들도 장사를 파한 시간 자신처럼 오갈 곳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멀지 않은 대학(고려대)의 학생이지만, 수배자 신세였던 그 사람은 다른 이유지만 똑같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를 학교로 데려온다. 다음날 지갑을 털어 차비하라고 건네주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소년은 말을 듣지 않고 그 돈으로 껌을 사서 되팔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이 소년은 고려대 정경대에 기숙(?)하며 형, 누나들 보살핌을 받으며 고려대 캠페스에서 자란다. 예기치 않게 1987년 이후 고려대 학생운동의 목격자이자 참여자(?)이자 증언자가 된다. 당시 고대 학생들은 그를 정돌이라 불렀다. 정경대 친구들이 데리고 다니는 아이라는 뜻. 자연스럽게 정경대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일찌기 집을 나간 엄마,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사랑을 알지 못했던 아이는 밥먹었냐고 물어봐주고 데리고 가서 숟가락 하나 더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 누나 형들이 그냥 좋았단다. 그 덕에 여였한 어른으로, 사회인으로 몫을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풍물패 대표. 대학생 형 누나들이 시위 때마다 풍물을 앞세우고 나가는게 보기 좋았고, 장구소리에 끌려 배웠는데, 재능을 발견했고, 그게 업이 되었다. 

 

정돌이.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에서 고려대 학생운동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만든 다큐멘타리 영화다. 2021년에 만들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못하다가 이제야 개봉을 준비하며 시사회를 열었다. 지인을 따라가서 몇 안되는 비고대인(?)으로 이 영화를 미리 보는 영광을 누렸다. 

 

정돌이는 이 영화의 화자다. 그가 어떻게 고대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는지 당시 그를 알고, 그를 보살피고 챙겼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정돌이와 추억은 80년대 학생운동 풍경과 뒷얘기로 들어가는 문이다. 당시 민주화 운동에 투신, 헌신했고 지금은 소시민으로, 여전히 공장과 농촌 어딘가에서 노동자로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덤덤하게 털어놓는 학생운동 풍경과 그 뒷얘기를 듣자니 코끝이 시큰하다.

 

80년대 전두환의 졸업정원제로 대학생 수가 전에 비해 늘었다. 그렇지만 당시 대학생이 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였다. 소위 386(지금은 586)이 사회 전체에서 다수는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5~60대 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우리 또래가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매일 외치던 전국 100만 학우 중에 학생회, 동아리 등을 통해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한 수는 1%나 될까? 그럼에도 시대가 그랬다. 시대정신이 그랬다. 매일 같이 시위에 참여하고 가투를 하지는 않아도 학교 안에서 우리들은 같은 편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내가 비고대인이어도 그들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감히 우리 얘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꼰대라고, 위선자라고 말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이 역시 꼰대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당시 학생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주인공인 다큐는 이게 처음 아닌가? 이제 와서 공을 인정 받고 싶다거나, 알아 달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 변해서 못된 어른이 되었거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이 원래 별별 유형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우리는 젊었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군부독재자와 반통일 집단과 제 욕심만 탐하는 재벌과 이 모든 자들의 배후인 미 제국주의의 강고한 벽에 금을 내고 싶었다. 그러는게 대학생이 해야할 의무라고 여겼다. 그런 열망과 정의감마저 부정하는 걸 볼때... 모멸감이 든다. 현재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 현재를 부정하기 위해 과거를 비루하게 만들려는 악의.....이 다큐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알면서 그러는 건 적이고, 모르면서 그런다면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라고. 맞다. 다만 설득하고 싶은 선의를 악의로 대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가 일반 개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작은 고대였지만, 당시 학생 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확장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건 또 이 작은 독립영화가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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