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노무현 재단 회원 산행에 참여했을 때다. 그날 회원 산행 시작하고 가장 많은 회원들이 왔다는데, 절반은 여성인 것이 눈에 띄었다. 산을 즐겨 타는 사람이 아니라도 서울 근교에서 쉽게 산책하듯 거닐 수 있는 코스여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3주 전 월례강좌에 갔다가 번쩍 하면서 눈이 크게 떠졌다. 참석자들을 둘러봤다. 어~ 여자들이 참 많네? 그것도 젊은 여성들? 아하~~ 그렇구나...아니 그렇지! 그리고 며칠전 5월 특강을 들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숫자를 세보지는 않았고, 또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말 할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만,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는 나같은 여자들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마음 결은, 사랑하는 방법은 남자들과 다르지 않을까?
이번 대선에서 50대 이상 여성들 중에 그여자를 찍은 사람이 과반 이상이라고 하지. 이번 대선을 가른 것은 50대 여성들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 2002년 대선에서 당시 50대 여성들은 누구를 보았을까? 2002년 대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민주당사 마당 가득한 희망돼지 저금통이라던가, 광주 경선장에서 환호하던 지지자들의 모습 같은 것...그리고 그 장면. 언론과 경선 경쟁 후보 쪽에서 장인어른의 좌익이력을 들먹이며 색깔론 공세를 펴자 후보 연설 중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 출마할 자격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자격없는 것이냐고 받아치던 모습.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런대로 언니이스트(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남자 선배는 나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바로 그날 그 장면에서 50대 이상 여성들이 표 줄 사람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러니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들한테서 애정 표현을 제대로 받아 본 적 없는 당시 50대 이상, 지금은 60대 이상이 되었을 그 또래 한국 여성들 눈에 친정 부모 일 들춰져 괴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남편이 피해입을까 노심초사하는 아내를 보며 만천하에 대고 내 사람 건드리지 말라고 역성들어 주는 남편, 부모의 일은 부모의 일이지 아내 잘못은 아니라며 맞서 싸워주는 남편이라...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세대 중년 이상 여성들이 꿈꿔온 이상적 남편의 모습, 로망, 워너비였을 거라는 것의 그가 내게 전해준 나름 예리한(?) 분석이었다. 맞다! 깨끗히 인정!
김어준 총수는 노무현 대통령를 두고 자기가 만난 세상 남자들 중에 가장 남자다운 남자, 진정한 남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알것 같지만, 어쩌면 그건 여자인 나로서는 온전하게 다 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남자들만이 느끼는 어떤 감수성과 감정이 이입되어 있을테니까. 같은 맥락에서 여자인 내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라고 했을 때, 그것에 담긴 의미, 시선, 감정을 남자들은 느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여자들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이유...그에 대해 여자들과 수다를 떨고 싶다. 나처럼 그를 좋아한 다른 여자들도 나와 같은 심정일지 궁금하다. 사우나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늘어져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배경이나 다름없이 켜져 있던 TV 화면으로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며 격정을 토하는 남자, 한 여자의 남편에게 꽂혀버린 여자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것 아니라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여자들은 어느 대목, 어느 순간에 그만 그에게 필이 꽂혔을까? 어쩌다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의 관 앞에서 통곡하게 만들었을까? 떠난 지 4년...아직도 그를 못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해 죽겠다.
궁금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의 정치, 그의 정책, 그의 신념에 이르기까지 좀 더 공공연하고 공식적인 그에 관한 기록, 그의 선택에 대해서도 여자들은 남자들하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이해하며, 다르게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먹물스럽게 말하자면 여성의 관점에서 본 노무현이라고 할까, 여성주의로 분석하는 노무현 시대라고나 할까,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과문한 탓인지, 노무현 대통령 사후 나온 그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남성 저자들이 쓴 것이다. 청와대 시절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좌했던 사람 몇몇이 짧은 회고, 추억담을 여럿과 어울려 내놓았을 뿐이다. 그것도 참 이상하긴 하다. 참모진에 여자들의 수가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노무현의 정치 동업자 여성 중에는 제대로 된 번듯한 단행본 하나 내놓지 않은 것 말이다. 있는데 내가 모를 수도 있겠다. 추억돋는 글 말고 그의 시대, 그의 정치를 분석한 글은...그러고 보니, 조기숙 교수가 내놓는 논문말고는 본적이 없네.
여자들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이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지지하게 만들었는지, 울게 했는지 여자들과 얘기 나누고, 듣고 싶다. 그것은 어쩌면, 위로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다. 평생은 아니어도 오랫동안 곁에 있어줄 것 같은 남자를 잃은 사람들끼리 서로 토닥여주고, 등을 토닥이는 따뜻한 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우리 안에서,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을 다시 느끼고 싶다. 맘껏 그를 그리워하고, 실컷 울고 싶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으니, 우리 스스로 서로 노무현이 되어야 하기에..
아...보고 싶고..미치도록...그립다..
'길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격시대...내가 울더라니까 (0) | 2014.02.09 |
---|---|
해병대 캠프같은 댈 왜 보내, 애를? (0) | 2013.07.31 |
레미제라블에서 얻는 위로 (0) | 2013.01.20 |
나는 진보가 싫어요 (0) | 2013.01.09 |
친노의 정의 (0) | 201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