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90년대 초인가..? 80년대는 대학에서 남학생들은 교련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다. 남학생은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하여간 무조건 일주일동안 인근 군부대에 입소해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는 군복무기간을 1~2개월인가 줄여주었다. 그때는 군복무기간도 하여간 졸~ 아니 무척 길었다. 지금은 2년도 채 안되는 것 같고 더 줄어야 하네 마네 하는데 그 때는 거의 3년에 육박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이거다. 최근에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학생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 그거 보고 대학시절 동기 남학생들이 입소훈련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는 것. 우리 과는 동급생 중 여학생이 80명 중 7명에 불과했는데, 다른 과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남학생들이 일주일이나 입소를 하는 동안 그들에게 위문 엽서를 써서 보내줬다. 7명이서 나눠서 열 장 가까이 엽서를 써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군대가기 전에 군대가는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고 고생하는 동기들을 위해 위로해 주자는 취지. 그런데 이게 참...애인도 아니고... 뭔 할말이 있겠어...나도 뭐라 뭐라 쓴 것 같은데...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그런데 다녀온 동기 녀석이 받은 엽서를 흔들며 누가 썼냐고..감동을 받았다고...헉~ㅠㅠ 그게 뭐라고 감동씩이나..아, 또 생각났다. 걔들 퇴소할 때 열차타고 오는데, 역까지 마중 나갔었다~! 헐..별짓 다했구만....이렇게 말하니 추억이 새록새록 같지만, 전혀 아니다. 군대 가기 싫은 것 만큼 여기 가기 싫어했다. 학교에서 엉터리로 교련 수업 받는 것도 도망못가서 안달했었는 걸 뭐...80년대까지 한국 사회는 완벽한 병영국가였던 샘. 그 증거가 중고대학생들이 받던 교련 수업과 입소훈련.
87년 6월 항쟁 끝난 후인가..가물가물한데... 얼마 후에 이 입소훈련이 없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안에서 ROTC들이 아무대서나 올려부치던 경례도 사라졌다. 그러다가...90년대 초반 어느날 해병대인지 군부대로 극기훈련 하러 간다는 뉴스를 봤다. 미쳤구만. 아직 군부 독재의 기억이 뚜렸하던 때였고, 시민을 죽인 군바리가 몸서리치게 생생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애들을 군대로 보내 정신무장도 시키고, 뭐 단결심도 기른다고? 개뿔~ 싫었다. 자기 몸을 규율과 통제로 학대하는 것을 참아서(극기)해서 뭐 어쩌려고? 자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걸로 단결심이 길러진다는 것도 참....공부하는 애들한테 이런 고강도 훈련은 왜 필요해?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었는데...이런 걸 아직도 하고 있었네?
난 확신한다. 의무로 가야하는 군대는 우리 나라 남자들에게 상명하복에 비겁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라고. 직장생활하면서 군대 갔다온 남자들의....음....순종을 많이 보왔다. 아닌걸 아니라고 하지 못하더라. 왜그럴까...타고나기도 했겠지만...한국 남성 집단들이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윗사람 비위맞추는데 능숙한 한국 특유의 조직문화에 공식으로 길들여지는 곳이 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으로 해병대같이 가장 물리적으로 힘든 훈련을 하는 곳을 미리 체험하여 몸에 가해지는 학대에 가까운 통제에 대한 내구력을 길러줘야 할만큼 우리 아이들이 해야 하는 공부, 견뎌야 하는 학교생활이 장난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싫다. 애들한테 이런걸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 현실도 싫고, 군대 같은 일시적으로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곳에 보내서 반민주에 익숙해질 것을 강요하는 것도 싫고...
아이들이 강하게 크길 바래? 그럼...지 하고 싶은 것을 지 힘을 끝까지 하게 해보시길. 그럼 저절로 강해질 걸? 갖고 싶은 걸 다 사주지 말고, 부족한 듯, 필요하면 지 힘으로 구하게 해보길..그럼 강해질걸? 군대 아니고도 아이를 강하게 키울 길은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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