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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균형, 인문학적 소양..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가 끝난 다음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남편과 언쟁을 했다. 부부싸움이 늘 그렇듯, 원인도 분명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였다. 그날 일기에 씌여진 상황을 다시 보니, 스스로 이 얼마나 구차한 일이냐고 한탄하고 있다.

옥신각신하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집밖으로 나왔다. 아뿔사....마스크를 안쓰고 있네.. 젠장...~~!! 

옷깃에 고개를 처박고 걷다가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추앙하고 환대해서 해방되자는 이야기에 감동해놓고...이 무슨...

집으로 돌아왔다. 설겆이를 마친 남편은 담배 한개피 들고 옥상으로 가고, 나는 참외를 꺼내 씻었다.

잠시 후 현관으로 들어서는 남편에게 말했다.

"와라, 참외 먹자~"

"응!"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앞서 쓴 글에서도 말했듯이, 박해영 작가와 김석윤 PD는 집에서 누워 쉬면서 보는 드라마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걸출한 예술 작품을 완성했다. 재미와 의미 모두 탁월하다. 

이런 성공을 따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을 분석하고, 흉내내고 싶을 것이다. 나라면 이걸 배우겠다. 뚝심, 끝까지 자기 작품을 자기 뜻대로 마무리 짓는 책임감, 균형감,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하니 꼰대스러운가? 뭐...인간애라고 할까?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더 나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박해영 작가와 김석윤 PD가 그린 인간들은 남루할지언정 비굴하지 않아서 좋았다. 단박에 정답을 맞추지는 못해도, 답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이라 흐믓했다. 마침내 해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추앙하고 환대하는 데까지는 다다른 사람들이라는게 자랑스럽다. 삼남매와 구씨가 다다른 곳이 우리같은 사람은 살아서는 절대 이르지 못할 저 너머가 아니라 어떻게 잘 하면 나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지점이어서 안도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 드라마가 거둔 성취의 비말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기막힌 조화. 그리고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예의. 모자라고, 흠결있지만 그래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마음, 휴머니즘! 

현아가 그랬지. 드라마는 주인공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걸 하려고 애쓰지만 잘 안되는 이야기라고. 현실에서도 안되는데 드라마에서도 안되는 거면 뭐하러 쓰느냐며 때려치웠다고. 현아는 쓰다 말았지만, 박해영은 끝까지 써서 완성했다. 드라마에서는 되게 하는 것, 애쓰지만 잘 안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해보고 싶게 자극하는  무엇. 판타지..

나의 해방일지는 숨쉬고 사는 지금 내 곁의 인간을 보여주는 리얼한 드라마지만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빼았지 않았다. 드라마가 예술이 되기 위해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다큐멘타리와 다르니까 드라마고, 드라마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실재 있을 것 같은 서사만이 아니라 바로 판타지야. 추앙 끝에 사랑으로 충만한 미정의  환한 얼굴은 판타지다. 염씨 삼남매가 왕복 4시간 걸려 출퇴근하며 밥벌이 하는 하루는 지독히 현실적이지만, 바람에 벗겨져 날아간 모자를 줍기 위해 구씨가 멀리 뛰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건 판타지지. 이 드라마를 기어이 볼 수 밖에 없는 건, 상사에게 까이고, 점주들에게 시달리며 지독하게 촌스러운 염씨 삼남매의 무지무지 리얼한 일상을 공감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외지인 구씨의 존재에서 발하는 판타지가 있어서지. 만약 이 드라마에 구씨가 없었다면, 그가 미정과 나누는 추앙과 환대가 없다면, 나는 보다 말았을 거다.  

그래, 맞아. 이 드라마가 빼어난 점은 바로 어디엔가 정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현실성과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일어나면 좋을 판타지가 서로 어울려 감동하기에 부담이 없고 환호하기에 부끄럽지 않다는 거다. 

무엇보다 박해영 작가와 김석윤 PD에게 고맙다. 무엇엔가 떠밀려 - 많은 경우 돈 -  습관처럼 쓰고, 클리세 끌어모아 살짝 양념해서는 새것인양 내놓지 않아서 좋다. 해야하니 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는 걸 알겠다. 시켜서가 아니므로 진짜로 마음이 가는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들이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서 맘껏 살게 했고, 살 수 있게 했다. 타협하지 않았다. 낯선 해방, 추앙, 환대를 다른 말로 바꾸지 않았다. 

이건 첫번째 감상문이다. 1편부터 다시보기 정주행 하면 다른 내용으로 감상문을 쓸수 있을 것이다. 

명작이 명작인것은 보편성때문이다. 길게는 수백년 동안 많게는 수십억명이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감상문을 쓸 수 있다는 것. 읽고 보고 감상한 사람들 숫자만큼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드라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깨달았다. 영화는 세번까지 본 작품이 제법 있지만, 드라마를 두 번 보는 일은 드물다. 나의 해방일지는 내게 그런 드라마가 될 것 같다. 깊고, 넓고, 긴~~우리네 인생 이야기!

PS. 조만간 손석구 배우에 관해 써야겠다. 나는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잘 못본다. 어색해서. 그 역으로 보이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여서. 이 사람은 어떻게 연기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다. 뚫어져라 보게 만드는 배우다. 이 다음이 궁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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