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케시트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인조편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서 퍼뜩 생각이 스쳤다.
"아...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조선이) 변방이라는 증거구나..."
소현세자는 쿠테타로 왕권을 찬탈한 인조의 첫째 아들로, 삼배구고두례로 청에 폐한 적장의 의례를 치른 것도 모자라 인질로 청에 잡혀가 오랫동안 심양에 머물다 귀국 후 아버지 인조한테 독살당한 것이 거의 확실한 비운의 세자다.
특이한 것은 볼모로 끌려가 있는 동안 세자는 시간을 헛살지 않아서, 그 곳에서 청의 북경에 넘실대던 17세기 선진 문명과 사상을 접하였다는 것이다. 세자는 청나라의 힘과 국제정세에 놀랐지만, 세상에 청나라만, 중국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첫 조선의 지도자급 인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자는 꿈에 부풀어 귀국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실록의 기록만 봐도 독살이 확실한 죽음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왕비 강씨와 아들 둘을 연달에 잃는다.
팟케스트 조선왕조실록에서 출연자들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만약 세자가 죽지 않았더람,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겠냐며 혀를 찼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소현세자의 죽음은 그냥 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 벌인 권력 투쟁의 희생자이고, 권력의 살벌함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당시 조선은 소현같은 인물을 허락할 준비도 역량도 없었다. 바로 그 사실이 바로 조선이 중심에서 아주 먼 변방이었다는 증거다.
소현세자가 볼모로 끌려간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이자 개인에게 닥친 커다란 시련이지만, 인생사 세옹지마라고 그렇게 본의가 아니라 타의로 끌려갔을 망정 그곳에서 그는 중화가 아닌 다른 생각, 다른 종교, 기술문명을 만났고, 습득할 기회를 얻었고, 당연히 우물안 개구리들인 양반과 왕족들과는 품과 깊이가 다른 세계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을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위험한 정적으로 인식한 아버지가 죽일 수 있는 곳. 그 전쟁이 요행으로, 천행으로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를 극구 부인하고, 스잘데기 없는 장례식에 상복을 며칠 동안 입어야 하느냐는 논쟁으로 세월을 허비해도 지배계급으로 사는데 아무 지장없는 세계를 200년은 더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조선이 변방이었기 때문이고, 거꾸로 조선이 변방이라는 증거다.
솔직히 소현세자가 그렇게 황망하게 죽지 않았더라도, 왕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없다. 정치는 힘, 세력으로 하는 것이고 십수년 조선 땅을 비운 그에게 왕의 큰 아들이라는 것, 왕위계승권자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최소한 조선이 우리가 아는 조선이 아니라 더 빨리 변하고, 고루한 양반들의 성리학 세계관을 깨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을테다.
모든 지상의 왕국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외친다. 그러나...조선은 달랐다. 청이 명을 멸한 후 중화는 이제 우리라고 한 것? 그것은 패배주의의 변형된 자위행위일 뿐. 자뻑. 노신의 아큐가 잘 하는 정신승리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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