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츠카 아키라. 무려 1929년 생. 85세. 이 노학자가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이라는 저서에서 하는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물론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쇼와시대 일본(히로이토 천왕 재위 시기)은 일본이 왜 저랬을가 싶을만큼 어리석은 전쟁을 한, 자랑스럽지 않은 시기이지만 메이지 시대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국가를 성취하며 일취월장한 반듯하고 괜찮은 시대였다고 말하고 실재로 그렇게 믿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하고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쇼와 시대 이웃 나라 침략과 전쟁이 어느날 갑자기 미쳐서 일으킨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다. 불행히도 일본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ㅓ 하는 메이지 시대에 잉태한 것이며, 그 증거가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 대한 기록을 공공연히 조작한 것이다. 조작은 기록만 아니라 사태를 조작하기 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관한 인식은 결정적으로 비틀려 있는데, 청일 전쟁이 우발적으로 일어난것처럼 떠들고, 그렇게 알고, 가르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1894년 동학농민군이 1차 봉기하자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보내 청고 한판 붙을 기회를 엿보았지만 농민군이 정부와 협상 끝에 자진 해산하자 간섭할 빌미가 없어졌고 그러자 계획적으로 조선 경복궁을 침탈해 고종을 인질로 잡은 뒤 그 모든 것이 마치 우연인 것처럼, 또는 고종이 원해서인것처럼 만든 뒤 청나라와 조선 땅에서 싸움을 벌인 것이 청일전쟁이다.
특히 일본이 경복궁을 침탈한 사실을 알게 된 농민군이 반외세와 반일기치를 내걸고 두번째로 봉기하자 일제는 농민군을 철저하게 학살 소탕하도록 명하고, 실행했는데 나카츠카 교수는 이 조선 농민군들의 저항은 20세기 전반 일본이 아시아 전역에서 마주한 반일운동의 서막이라고 강조한다. 사실이 이런데도 일본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교과서에서 마치 당시 조선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식민지배를 받아들이거나, 정복당한 것처럼 묘사하고 지금도 대다수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실제 있었던 일을 무시하고, 지우고, 조작해서 만들어진 것이 메이지 영광론이고, 이런 허툰 영광론에 휩쓸려서는 일본이 이웃나라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노학자의 카량카량한 충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차례 놀랐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것. 그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것. 그리고...이렇게 자기 나라 역사를 비판적으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인식하고 칼날같은 비판을 하는 사람이 일본 안에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 보수 우익의 뿌리와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그가 지향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
아베를 비판하면서 한국언론과 한국인은 그가 군국주의를 부활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그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그가 그리는 일본은 중일전쟁을 강행하고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는 쇼와시대 전범국가 일본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를 영광스럽게 기억하도록 만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이긴 메이지 시대 일본이다! 그러기에 일본 국민들도 아베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베 지지율의 비밀을 하나 푼 느낌?!
나카츠가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인들이 당시 두 전쟁에 참여한 일본군인들이 국제법을 잘지키고 포로에게도 관용을 배푸는 등 멋진 모습을 보였고, 이에 영국 미국 등 서방 선진국도 칭찬했다고 자랑하는 대목을 여러차례 인용했다. 즉, 전쟁은 했지만 멋지게 싸우고, 무엇보다 이겼다! 당시 최강대국으로 꼽힌 두 나라를 이기고 일본인들의 기세와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대, 그 메이지 시대를 영광스럽게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아베를 거리낌없이 지지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나카츠가 교수는 이 책에서 관용하는 일본군은 조선민족에 대해서는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았음을 논증하며, 메이지 영광론에 짱돌을 던지지만.
나카츠카 교수는 일본인에게 충고한다. 메이지 영광론의 허상을 꿰뚫지 않으면 안된다고. 쇼와 시대는 나빴지만 메이지 시대는 괜찮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반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을 회피하는 것이된다고. 쇼와시대의 패배한 전쟁은 메이지 시대 승리한 두 전쟁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고, 쇼와시대 기승을 부리던 군국주의는 남의 나라 민중을 학살해 놓고 그 사실을 깡그리 지운 뒤 자신들의 영광으로만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고.
마지막으로 나카츠카 교수는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근대국가 수립을 위해 고분부투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굴욕을 맞보아, 일본 식민지배가 끝나고 해방을 맞이한 후에도 민족의 분단, 동족끼리 싸운 한국 전쟁의 비극, 독재정권의 연속, 대통령 암살, 한 순간이었던 봄도 도 다시 군부독재한테 유린당하였고, 그동안 북에 대한 적대가 한국의 제1사명이 되어 정보는 굳게 통제된, 그러한 시대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누군가에게 배울 것도 없이, 또 계속되는 독재 정치 하에서 자신들 머리로 사회문제를 역사적으로 사회구조와 관련하여 생각한 일은 그 자체게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올해는 동학농민운동 120주년이 되는 해다. 아무도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 자신의 힘으로 제대로된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주지 않는 때, 한 노학자가, 그것도 일본인이 동학농민군의 항쟁을 기억해주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해주고 있다. 고맙고...한편으로...챙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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